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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은 왜 성취로 증명되려 하는가

📑 목차

    영화 원더를 통해 우리가 왜 존엄을 성취로 증명하려 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봅니다.

    잘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어떻게 존재의 가치를 흔들게 되는지를 사유합니다.

     

    우리는 흔히 존엄을 당연한 권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존엄은 자주 조건을 달고 나타납니다.

    잘해냈을 때, 버텨냈을 때, 남들보다 나은 결과를 보였을 때 비로소 인정받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교과서처럼 익숙하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 부담은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성취는 언제부터 존엄의 조건이 되었을까요

     

    영화 원더 속 어기는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시험대 위에 놓입니다. 그는 착해야 하고, 참고 견뎌야 하며,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늘 ‘잘하고 있는지’라는 기준으로 바라보입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조용히 보여줍니다.

    다름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가 종종 요구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존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취를 통해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다뤄집니다.

     

    우리는 왜 ‘잘해내는 사람’이 되려 애쓰게 되었을까요

     

    사람이 성취에 매달리는 이유는 단순히 인정받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성취는 불안을 잠시 덮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잘하고 있다는 감각은,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느껴집니다. 어기가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더 예의 바르게 굴며, 갈등을 피하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가깝습니다.

     

    그는 문제없는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합니다.

    이는 약함이라기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성취는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패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취가 존엄을 대신할 때 생기는 균열

     

    그러나 성취가 존엄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삶은 점점 더 팽팽해집니다. 잘할 때는 괜찮지만,

    실수하는 순간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구조 속에서 사람은 쉬지 못합니다.

    어기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더 조입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지고, 웃음조차 조심스럽게 관리합니다.

    영화는 이 모습을 비극적으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한 장면처럼 보여줍니다.

    우리 역시 성취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며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원더가 조용히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존엄은 성취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중받아야 할 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했다”고 말하면서도,

    왜 그 말이 필요해졌는지는 자주 묻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성과를 쌓는 일이 아니라,

    성취가 없어도 존중받아야 할 자리를 지켜주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더는 아이의 얼굴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존재가 아니라

    결과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었는지를.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존엄이 성취로 증명되는 구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친절이 선택이 아니라 태도가 되는 이유를 이어서 살펴봅니다.


    다음 글: 친절이 관계의 태도가 되는 이유